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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Pier Paolo Pasolini)
출생 1922-03-05
국적 이탈리아
직업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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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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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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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작 <마태복음> <돼지우리> <살로 소돔의 120일>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혁명가이자 영화감독인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현대영화의 기린아이다. 폭력에 대한 과격한 묘사와 파시즘과 반파시즘의 기묘한 줄다리기는 그를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세웠으며, 그 스스로도 논쟁가이자 영화이론가이기도 했다.

1942년에 첫 시집인 <카사르사의 노래 Poesie a Casarsa>(1942)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이 된 파졸리니는 파시스트 장교인 아버지와 농민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기묘한 운명은 그를 극단적인 세계관에 몰입토록 한다. 그의 첫 시집인 <카사르사의 노래>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파졸리니 영화와 달리 프리울리 농부들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자 목가였다. 그러나 농부들의 대지주에 대한 반란과 스스로 동성애자 혐의로 당조직에서 추방되면서 비운의 삶이 시작된다. 로마로 옮겨간 파졸리니는 생계를 위한 활동과 자신의 정치적 강령을 고수하면서 투쟁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1961년에 만든 데뷔작 <걸인 Accattone>은 자신의 소설을 기초로 하여 계급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이때부터 부르주아에 대한 혐오와 공격을 시작하여 <마마로마 Mamma Roma>(1962) <백색 치즈 La Ricotta>(1963) <마태복음 Il Vangelo Secondo Matteo>(1965) <매와 참새 Uccel-lacci e Uccellini>(1966) <오이디푸스 왕 Edipo Re>(1967) 등을 만든다.

이들은 크게 두가지 계열로 해석되는데, 하나는 신화적인 세계를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보드웰은 <세계 영화사>에서 파졸리니를 ‘우화’를 통한 정치적 강령을 내세우는 감독으로 묘사하였는데 이러한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마태복음> <오이디푸스 왕> <메데아 Medea>(1970) <살로 소돔의 120일 Salo le 120 Giornate di Sodoma>(1975) 등이다. 가령 <살로 소돔의 120일>의 경우 파시스트들이 벌이는 최후의 만찬은 가학과 자학이 한데 뒤섞여 혼돈스러운 파시스트의 축제를 발한다. 이 영화 완성 직후 파졸리니는 동성애 상대자인 17살의 청년에게 살해당했다고 전해지는데, 영화만큼이나 충격적인 삶을 살았던 파졸리니의 최후는 너무나 운명적이다.

그리고 다른 대부분의 작품들은 일상의 폭력과 현실의 겹침 속에서 조소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린다. 그는 항상 지배체제에서 일탈하려는 욕망을 보여준다. 반사회적인 것, 반문명적인 것, 비도덕적인 것에 대한 강렬한 동경을 보여주는 파졸리니는 사회의 위선을 드러내는 데 앞장선다. 그의 영화의 현실감은 주로 의상과 인물들의 알맞은 선택에 의해 드러난다. 그는 결코 스튜디오 촬영을 하지 않았으며 일부러 세트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는 영화 속의 모든 상황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일부러 그와 유사한 것들을 찾았다. 배역도 마찬가지. 극중인물과 실제로 동일한 출신 배경을 지닌 인물들을 골라냈다. 비록 연기력은 뒤처졌을지 몰라도 이들이 몰입하였을 때 보여주는 리얼리티는 기존의 드라마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또한 미술적인 재능도 그의 영화에 큰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의 영화가 상당 부분 신화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데 이러한 분위기를 한층 돋우기 위하여 색채 사용에 항상 신중했다. 혹자는 그의 평면적인 영화 공간을 중세 회화의 시각적인 특성과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나의 모든 영화의 중심은 신성함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신성함이 일상 생활 속에서 실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삶의 궁극적인 실재는 신성함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이는 반드시 표출된다.” 파졸리니와 연대하였던 혹은 그를 따르는 많은 이들은 파졸리니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 그의 죽음은 느닷없었고, 파시즘을 제압하기 위해 그가 사용하는 표현 방식은 어느새 파시스트의 언어를 닮아 있었다. 그는 <살로 소돔의 120일>을 완성한 순간에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때아닌 죽음과 논쟁으로 일관한 그의 영화 세계는 또하나의 신화적 공간으로 우리에게 던져진다. / 영화감독사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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