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뉴스

[커버스타]

[스페셜] 대만 청춘영화가 특별한 몇 가지 이유Like

뉴스 기사 상세보기
글 : 윤혜지 | 글 : 이화정 | 2016-06-14
Share it 페이스북 트위터 |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나의 소녀시대>

글 윤혜지


‘청춘영화’라는 명명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청춘’이란 단어를 통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너무 많아 때로는 무신경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청춘영화라 부를 수 있는 건 어떤 영화일까. 꿈, 가족, 희망, 성장, 좌절, 첫사랑 등 많은 키워드들이 대개 청춘영화의 소재나 주제로 쓰인다. 그 키워드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찾자면 청춘영화는 시간에 관한 영화다. 특정 시간대를 잘라 기억해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청춘영화를 본다. 청춘영화를 계속 만들고 또 보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꾸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려 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추억은 애초에 있지도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때 그 시절 갖고 싶었던 것, 가졌으면 했던 것이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청춘영화는 시간과 기억에 관한 영화다.



최근 기이할 정도로 흥행 중인 영화가 있다. 대만 청춘영화 <나의 소녀시대>다. 지난해 대만에서 개봉했을 때도 대만 박스오피스를 갈아치웠고,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첫 소개됐을 때도 화제작이었다. 영화제 상영 전 이미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영화를 본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알음알음 소문이 퍼졌고, 국내 정식 개봉 뒤에도 흥행한 <말할 수 없는 비밀>(2007)의 사례와 상당히 비슷하다(<말할 수 없는 비밀>의 누적 관객수는 9만9106명이다). 두 작품 모두 청소년 시절의 첫사랑을 아련하게 그려냈다. 비슷한 유형의 대만영화들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남색대문>(2002), <영원한 여름>(2006), <청설>(2009), <점프 아쉰>(2011),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일련의 영화들엔 공통된 요소들이 있다. 교복 입은 학생들, 예민한 시선, 조심스럽고 섬세한 감정 묘사, 주인공들의 말간 얼굴, 그리고 어떤 예쁜 것들. 그것이 주인공의 깨끗한 얼굴이든, 낭만적인 상황이든, 파릇파릇한 풍경이든 대만의 청춘영화엔 반드시 예쁜 것이 있어야 한다.



왜 ‘대만’과 ‘청춘’인가



대만에서 꾸준하게 ‘예쁜 청춘영화’가 제작, 소비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대만 영화산업 안에서 청춘영화는 외화와 경쟁할 수 있을 만한 안정적인 상업영화 장르이자 특정한 관객층과 팬덤을 지속적으로 형성해낼 수 있는 영역이다. 1970년대 급속한 경제 발전을 거치며 대만 정부는 자국 콘텐츠 개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자국영화 제작 지원이 활발해지고 검열도 완화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광음적고사>(1982)와 <샌드위치 맨>(1983)으로 촉발된 대만 뉴웨이브의 기수들인 에드워드 양, 허우샤오시엔 같은 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담담한 현실 묘사, 사실적인 롱테이크 촬영, 동시녹음, 비전문배우의 적극적 기용 등을 통해 대만의 사회와 역사를 반추하는 예민한 시선의 걸작들이 이때 다수 탄생했다. 에드워드 양의 <공포분자>(1985)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허우샤오시엔의 <펑꾸이에서 온 소년>(1983)을 비롯하여 이른바 그의 ‘성장 3부작’이라 불리는 <동동의 여름방학>(1984), <동년왕사>(1985), <연연풍진>(1986) 등은 젊은 세대의 실존적 고민을 대만의 현실과 엮어 구체적이고 섬세한 방식으로 드러낸 대표적인 작품들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장초치와 차이밍량이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들의 뒤를 이을 만한 인상적인 작가가 등장하지 않았고, 앞서 언급한 감독들은 대만 영화산업의 상업적 측면과는 무관해져만 갔기에 대만의 자국영화 시장은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할리우드영화들이 시장을 잠식하여 자국영화 제작 환경은 더욱 위축되었고 소자본, 소규모로 짧은 기간 내에 큰 위험 없이 제작할 수 있는 상업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졌다. 대만 영화산업은 긴 암중모색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또한 청춘영화는 콘텐츠 구매력이 높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사이에 태어난 세대)가 무난히 선호할 만한 타입의 영화다. 대만의 밀레니얼 세대는 일본의 순정만화와 한국의 로맨스 드라마를 고루 즐겨온 데다 영화를 익숙한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이고 있는 세대다. 또 대만은 아이돌이나 젊은 배우가 출연해 로맨스를 펼치는 우상극(偶像剧)이 주류 장르로 안착한 지 오래다. 대개 우상극의 남자주인공들은 (<나의 소녀시대>의 쉬타이위처럼) 겉으로 보기엔 차가워 보이지만 과거의 상처로 인해 잠시 변한 것뿐이고 그 본질은 선하고 다정하여 여자주인공의 헌신과 사랑에 다시 본래의 모습을 찾는 인물들이다. 대만 우상극의 대표 캐릭터가 일본 순정만화 <꽃보다 남자>를 드라마화한 <유성화원>(2002)의 따오밍스(언승욱)인데 <나의 소녀시대>에서 쉬타이위의 성인 역을 언승욱이 연기한 것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우상극이 드라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탓에 나이든 배우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대만의 경력 있는 배우들은 대개 중국 본토로 넘어가 활동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사소천왕’(대만의 사대천왕) 금성무, 임지령, 오기륭, 소유붕과 현재 중국 본토에서 가장 활발히 드라마를 찍고 있는 배우 중 하나인 곽건화가 대표적 사례다. 젊은 배우는 많은데 나이든 배우가 없으니 자연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자꾸만 청춘영화, 청춘드라마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청춘물이라 해도 한국과 일본의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일본 순정만화와 199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한국 드라마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국 청춘물의 지질함과 일본 청춘물의 어두움은 덜하다. 1980년대 대만 뉴웨이브영화에 곧잘 나타났던 깊은 고뇌도 찾기 힘들다. 청춘영화는 예쁘고 순수한 망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불안한 현실에서 미화되는 과거



현재 많은 대만 청년들은 22K 세대라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를 이르듯, 대졸 초임이 2만2천(22k)대만달러(79만원)에 불과한 청년 세대를 대신하는 표현이다.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경제성장률도 저조하고, 청년 실업률은 나날이 치솟고 있다. ‘티끌 모아 티끌’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돈을 모아봤자 풍요로운 미래가 오리란 보장이 없으니 눈앞의 작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겠다는 풍조가 한국과 대만에 퍼지고 있다. 대만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든 신조어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널리 쓰이게 된 것도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래서 청년들에겐, 우리에겐 망상이 필요하다. 현실에 대한 고민 없이 활기 넘치는 일상을 흘려보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래서 그리운 것이다. 물론 그 시절이 실제로 존재했느냐는 중요치 않다. 지금 우리 머릿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돼 대리만족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망상은 그 자체로 청춘영화가 갖는 최고의 미덕이다. <나의 소녀시대>엔, 관객이 감정이입을 할 주인공 린전신에겐 모든 환상이 실재한다. 안경만 벗어도 귀여워지는 외모, 우상처럼 따르는 ‘오빠’, 매너 좋은 남학우와 발랄하고 다정한 친구들, 사춘기 소녀의 ‘덕질’과 변덕스러운 마음까지 모두 이해해주는 잘생기고 똑똑한 첫사랑 남자애까지. 흥행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거다.



한겨울에도 영상 10도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온난한 기후 덕에 대만의 풍광은 사시사철 푸르다. 비가 자주, 많이 오기 때문에 날씨도 무척 변덕스럽다. 마치 십대 시절의 우리 마음처럼. 대만 청춘영화의 청량하고 치기 어린 인물들은 이런 배경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산한 가을과 시린 겨울이 없는 대만이 아니라면 어느 곳에서 이토록 화사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유성화원>의 F4를 연기한 오건호, 언승욱, 주효천, 주유민(왼쪽부터).

영화 보기 전 알면 좋은 대만과 한•중•일 관계



대만 원주민과 본성인들은 1624년부터 차례로 네덜란드, 청나라, 일본의 식민 시기를 거쳤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했을 때와는 다르게 대만을 상대로는 문화통치를 펼쳤고, 대만 본성인들은 일본이 대만을 근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식민통치에 관해서도 일본이 대만을 침략했다기보다 청나라 말기의 정치인이었던 리홍장이 일본에 자신들의 나라를 넘겨주었다는 인식이 강해 일본에 대한 반감이 덜한 이유도 있다. 따라서 대만은 다양한 문화와 정서가 혼합된 채로 근대화를 이뤘고 숱한 문화적 텍스트에 그 영향이 짙게 남아 있다. 대만의 많은 우상극이 일본 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데 <꽃보다 남자>를 드라마화한 <유성화원>, <아름다운 그대에게>를 각색한 <화양소년소녀>(2006), <장난스런 키스>가 원작인 <악작극지문>(2007)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배우 박신혜가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선풍관가>(2011)는 <하야테처럼>을 각색한 드라마다.



다시 대만 역사로 돌아가면, 1945년 일본이 패전하고 1949년 중국 대륙에선 국공내전이 발발한다. 패배한 국민당의 장제스는 대만으로 망명한 뒤 중화민국을 수립했고 공산당의 마오쩌둥은 대륙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이 무렵부터 대만은 지금까지 쭉 반공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며 (실질적 교류와 무관하게) 정서적으로는 중국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1990년대 초부턴 대만에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영화 속에 나타나는 젊은이들의 의식과 정서도 선배 세대의 그것과는 퍽 다른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역사적 대립으로 인한 과거의 정서적 이질감은 거의 소멸돼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오월지련>(2004)에서 대만 남자 아레이(진백림)와 중국 여자 셴셴(유역비)은 인터넷 채팅을 통해 가까워진다. 어쩌다 셴셴이 대만을 방문하면서 둘의 호감은 사랑으로 발전하는데 셴셴이 중국으로 가야 할 때가 되자 둘은 관계를 지속하는 데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오월지련>은 쌍방의 의지만 있다면 대만 남자와 중국 여자의 결합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대만의 여러 청춘물들은 대만의 독립적인 위치를 상정해두고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평화적 공존을 소망하거나 은유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만의 시선이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입지는 굉장히 약해졌고, 최근의 ‘쯔위 사태’로도 알 수 있듯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느냐 중국의 지방자치 지역으로 바라보느냐가 여전히 첨예한 화두다. 반면 중국과의 수교로 잠시 끊겼던 한국과 대만의 교류가 1990년대부터 다시 이어지고 한류가 유행하면서 한국과 대만은 서로의 문화까지도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두 나라 모두 이 시점에서 회상하는 ‘복고’가 과히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유덕화, 롤러장 등 <나의 소녀시대>에 등장하는 추억의 텍스트들은 비단 대만인만이 즐기던 것이 아니다. <여친남친>(2012) 속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그림자가 우리에게 무척 익숙하듯이.



글 이화정



<나의 소녀시대> 속 반가운 90년대 아이콘



오직 왕대륙만 보일 수도 있다. 안다. 벌써 옛날 이야기니까. 린전신의 방안을 보는 매의 눈, 그들의 대화를 다 알아듣는 소머즈 귀는 90년대 청춘을 보낸 이들의 몫이다. 유덕화, 소유붕, 손요위, 주혜민 등 <나의 소녀시대>에는 90년대의 아이콘들이 별처럼 쏟아진다.



오대유



<우리도 할 말은 있다>(1988)는 1988년 국내에서 개봉한 거의 최초의 대만 청춘영화다. <나의 소녀시대>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까만 민소매 차림의 오대유의 이미지가 지금의 <나의 소녀시대> 속 왕대륙과 꼭 닮았기에 자동적으로 떠오른 추억. 오대유는 이 작품의 성공으로 대만과 본토의 교류가 사실상 없던 그 시절에 중국, 홍콩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첸카이거의 <풍월>(1996), 장원의 <귀신이 온다>(2000) 등에도 출연했다.



유덕화



왕대륙의 오토바이 ‘후까시’ 신은 정확히 유덕화의 <천장지구>(1990) 패러디 장면이다. 액션누아르와 가슴 절절한 멜로를 결합한 작품으로 사대천왕(유덕화, 장학우, 여명, 곽부성) 중 한명인 유덕화와 청순한 이미지의 오천련의 등장을 알린 영화. 오토바이를 탄 유덕화, 그 마지막 비극의 웨딩 신은 그 시절 홍콩영화 전체를 소환하는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망정수>



회사에서 치이고 상처받은 어른 린전신,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지나간 유행가 <망정수>. 린전신이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결정적 요소다. 유덕화를 만났을 때 린전신의 핸드폰 벨소리 역시 이 노래다. 유덕화가 부른 만다린 곡 <망정수>는 영화 <천여지>(1994)의 주제곡으로 당시 홍콩을 넘어 중화권을 강타한 최고의 히트곡이다.



소유붕



영화 초반부, 소유붕의 휴학 소식은 린전신과 쉬타이위의 학창 시절을 설명해 주는 중요 단서다. 때는 바야흐로 대만 최고의 인기가수이자 배우인 소유붕이 대만 국립대학교를 휴학하던 1994년. 금성무, 오기륭, 임지령과 함께 ‘사소천왕’(대만의 사대천왕)으로 알려진 소유붕. 오기륭과 함께 대만 아이돌 그룹 ‘소호대’로 데뷔해 연기자로 발돋움했다. 대만 국립대학교 기계학과에 들어간 모범생이었던 그가 경영학과로 전과하려 하다 여의치 않자 휴학을 한 뉴스는 당시 대만 연예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금성무는 일본인으로 중화권에서 활동한 걸로 알려져 있지만 대만계 일본인. 임지령 역시 가수 출신으로 금성무처럼 홍콩에서 <추남자>(1993), <신유성호접검>(1993) 등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글 : 윤혜지 | 글 : 이화정 |

네티즌 한마디

등록

관련키워드

관련기사

온라인 독자엽서 독자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